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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로 돌아가기

 

 

본가의 다락방에는 우리 가족의 지난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모아둔 어릴 적 일기장과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쌓여있는 이불들, 아버지의 젊은 날 귓가에 울려진 음악 테이프와 10대 때 즐겨 들었던 음악 CD들, 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의 사진첩, 어두운 밤을 밝힌 아버지의 지난밤 글귀 등등 우리 가족의 작은 박물관이 거기 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살았던 단칸방에도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그곳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좁은 계단을 올라 그곳에서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잠시 이 작은 박물관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당시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 다락방까지 다다른 것이다.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아버지의 옛 사진을 발견했다. 지금과는 달리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민과 세상 진지한 눈빛을 담은 얼굴의 한 청년은 내가 추운 겨울이 오면 꺼내 입는 검은색 외투와 똑같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2년 전 대구를 떠날 때 아버지가 꺼내주신 야상이었다. 오래된 사진 속 아버지의 외투를 입고 나갈 때면 매번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이 흘러 사진 속 청년보다는 미소가 더욱더 가득해졌지만 진지한 눈빛은 그대로인 그 얼굴을. 

 

다음 사진 속에는 청량한 여름날 푸른 숲속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작은 입을 앙다문 새하얀 피부의 아가씨가 서 있었다. 어찌나 고운지 사진을 발견하자마자 꺼내어 내 방의 보물 상자(나름 소중한 것들을 모아둔 곳)에 넣어 두었다가 이곳으로 올 때 가지고 왔다. 사진 속 고운 아가씨의 미소는 어딘가 어색한데 카메라 렌즈 앞에만 서면 난감해지는 그 웃음, 특히 입만 웃고 눈은 그대로인 어머니의 어색한 미소는 지금도 여전하다. 요즘은 내가 스킬이 늘어 어머니의 렌즈-포비아를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냥 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활짝 웃으면 된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사진 속 주인공들과 함께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과묵한 청년과는 밤하늘 아래 그의 작업실 옆 풀밭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꼬챙이에 끼운 소시지를 구워 먹었다. 뽀얀 얼굴에 보조개가 이쁜 아가씨와는 손 꼭 잡고 부산 금정산의 산성과 계곡을 누볐다. 그저 즐겁게, 그날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렇게 의미 없는 즐거움을 일깨우며 나의 그리기를 만들었다. 어두운 밤하늘 별빛 아래 주변의 경계들이 사라지며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가득했던 경험은 알 수 없는 대상과 교감하는 그리기로, 엄마 손의 온기와 산과 계곡의 이야기들은 세상과 교감하는 그리기가 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그리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기라는 것은 이렇듯 지극히 인간다운 세상과 교감하기이다. 나는 줄 곳 무언가 궁금하면 그것을 그리는 것으로 풀어 왔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그림을 함께 두고 대화했으며 좀 더 나아가서는 세상과 나 사이에 그림을 두고 삼자 관계를 맺어 온 것이다. 때로는 억지스러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그러다 얼굴이 빨개지며 다시 그림을 돌아봤다. 당연히 여기에 얽힌 대상과의 관계들도 과장됐다가 다시 돌아보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기-그리기는 지속하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나의 그림들을 모아 다시 펼쳐봤을 때 내가 어떻게 세상과 교감하며 살아왔는지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해줄 ‘그림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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