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유월이 되어가는 밤에도 여전히 겨울에 입던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있다. 낮에는 조금 후덥한 느낌이 들지만 이내 해가 지고 어스름이 들면 긴 팔이 필요한 때다. 그러고 보니 작업을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는 어둠과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빛이 드리운 때를 싫어하거나 피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때가 온연히 홀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걸까? 이전에는 해가 뜨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에너지들이 흐르고 밤이 되면 어떤 쉼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든다.
밤이 되어도 멈추는 것은 없다. 언제나 세상은 흐르고 있고 우리의 몸도, 생각도, 마르고 단단한 저 돌덩이조차도... 모든 것은 흐른다. 그래서 해가 물러나고 빛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우리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기 시작한다. 두려움은 여기서 나타난다. 우린 명확하게 증명되는 예측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호기심이 나를 여기에 있게 만들어주지만, 그것이 가진 불확실성에 대한 적대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다 보니 걱정만 산더미같이 쌓여간다. 생각은 멈춰버리고 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찾은 도피처가 그냥 글들을 써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찾은 것은 아니고 마침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런저런 형태의 글들을 쓰게 되었고 작업에 대한 감상문을 써보기도 하고 전시에 대한 비평문도 써보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글쓰기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쓴 글과 내 글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표현한 글들을 공유해본다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각자의 생각이 표현된 글들은 마치 그림처럼 느껴진다. 수업에서 제시하는 글의 성격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표현되는 자기 글의 몸짓은 각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것을 통해 사유와 몸은 구분되다가도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사실 여기에 손글씨가 아직 남아있었다면 더욱 그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려진 리듬까지 볼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지만 타이핑되고 정형화된 글씨체라 하더라도 문체라는 음률이 남아있기에 나는 여기서 아직, 여전히 그리기를 발견한다.
과거 몇몇 작업에서 글과 그림이 뒤섞인 장면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 작업이 떠올라 다시 한 점을 그려보고 있는데 여기에 그려진 글은 그림일지 글일지 알 수 없다. 글을 위한 그림이라 생각하면 그림을 위한 글이기도 했기 때문에 글이 그림을 품은 것인지 그림이 글을 품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여기 드러난 작업에서는 익숙한 글 읽기가 의미 없어진다. 단지 그림을 보듯이 글을 대할 때 어떤 조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글이 가진 의미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읽어보려 시도한다면 문맥이 맞춰질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손글씨가 남아있다. 그리기라는 것은 참 끝도 없는 것이구나. 수많은 필기체가 이제는 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