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사이의 경계_김지현(Writer, Photographer)_2021
'이미지가 복합적인 관점들이 교차하는 장소라면, 우리는 이미지를 ‘간격’이라는 말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행위로서 이미지는 각각의 관점에 귀속되는 고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 관점들의 간격에서 생성되는 긴장관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양쪽으로 벌려진 간격 속에서 이미지는 진동하고 박동하기 시작한다.' [1]
어느 문학 작가는 산은 땅에서 솟아오른 기이한 머리이고 강은 산이 흘린 눈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슴은 산의 슬픔에서 갈증을 푼다고.[2] 차현욱의 <끝없는 밤>에선 기억 속 풍경들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룬다. 흘러나온 것들을 손에 오목하게 담아보면 그 색은 어쩌면 총천연색일지도. 망원경으로 들여다 봤다던 저 머나먼 우주는 푸른빛으로, 송추동 현관에서 보이는 네 그루의 나무는 바람의 빛깔로, 기억 속 희미해진 풍경들은 어쩌면 노을빛으로. 잠들어 있지 않은 시간을 낮과 밤 사이의 경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경계에 사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대개 아슬하고도 유연해서 바람이라든가 혹은 풍겨오는 냄새를 타고 그리 예고도 없이 가로지른다. 그런 기억들은 순간 왔다 가는 꽃피는 계절도 아니고, 비행기 날아간 자리처럼 이내 사라지고 마는 지나감도 아니다. 도리어 굳어지기 전 시멘트에 남긴 발자국과도 같아서 시간이 겹겹이 흘러도 먼지 털어내면 그대로인 그런 자국들처럼 산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다. 조금의 틈만 줘도 느닷없이 치고 들어와 버리고 마는.
그림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더는 눈앞에 펼쳐지지 않는 그때, 그 장면, 그 풍경을 한데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짙게 찍힌 점이 사실로서의 장면이고 그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번지는 모습이 기억 속 풍경이라 할 수 있다면, 먹이 더는 닿지 않는 곳에서 가능한 세계가 있다. 그곳은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간극일 테고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백일 텐데, 이 ‘양쪽으로 벌려진 간격’은 도리어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또 다른 상상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간격은 끝없는 밤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되고, 그 사이를 흐르는 폭포가 되며 그 위로 흩날리는 눈발이 된다. 이처럼 각각의 풍경은 얽히고설킨 채 여백으로 서로를 가로지르며, 이러한 가로지름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곳은 낮도, 아침이 오면 사라지는 밤도 아닐 것이다. 느닷없는 기억 속 풍경들이 교차하는, 제목처럼 끝없는 밤일 수 있겠지.
그러나 여기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세계.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면 그만. 꿈 속에서나 가봤을까. 어느 행성에서 보내왔을지도 모르는, 우주 문양이 인장처럼 찍힌 이 엽서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
滄海月明珠有淚 푸른 바다에 달빛 밝으니 흘리는 눈물 진주되고
藍田日暖玉生煙 따뜻한 날이면 남전산 옥돌에서 아지랑이 오르니
此情可待成追憶 이런 마음 세월 기다려 추억이 될 수 있었지만
只是當時已惘然 다만 그 때는 이것들로 너무 마음 아팠다오
이상은(李商隱), 금슬(錦瑟)
Reference
[1]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딧불의 잔존』, 김홍기 옮김, 도서출판 길, 2020, 170-171쪽.
[2]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353쪽.
link: ow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