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닮지 않은 사이 似以不似之間 - 체험된 시각의 세계_김미형_2013
동아시아 옛 그림의 전통적 매체인 지필묵을 들고 서있는 차현욱의 모습은 현대미 술의 최전선이 제공하는 속도, 경쟁력과 같은 현란한 시각적 전투성에서 비켜난 듯 보일 수 있다. 아직 서른을 넘기지 않은 그에게 말로는 뜨거웠지만 쉽사리 대안을 얻지 못하고 표류하는 ‘한국화의 정체성’ 논란은 기 십년을 반복해 온 화단의 지겹 고도 낯선 풍경일 뿐이다. 해묵은 논쟁과 반성의 중심에는 수묵화의 도식적 전통 답습과 미술대학의 안이한 교육이 동시대인의 현실인식과 미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사이 화단의 세대교체와 미술환경의 변 화-신진작가 육성과 2007년을 기점으로 지난 몇 년간 미술시장의 활황-로 지필묵 을 벗어 던지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형식 실험을 한다든가, 동양화를 현대적 미감 에 맞게 번안하는 노력들은 이제 새롭지만도 않다.
차현욱은 수묵산수화의 형식에서 출발하였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틀에서 벗어나 지각적 생성으로서의 산수를 보여주려고 한다. 2011년 작 <그려서 새긴 병산 이야 기>시리즈와 2013년 <그려서 새긴 이야기>를 비교 감상해보면 진경산수의 전통에 기대고 있던 그가 어디서 어떻게 그것의 형식에서 빠져나오려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초기의 <그려서 새긴 병산>은 전통산수의 공간구도를 이어나가는데, 부감법의 비중 있는 화면 장악과 평원법의 부분적인 적용이 눈에 띤다. 병산의 반대편 고봉 에서 부감시로 바라 본 원경의 봉우리들과, 현실감을 상실한 주봉 뒤편의 준봉들, 근경의 낮은 봉우리들, 정면에서 바라 본 망루 기둥들의 평면성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날렵하게 미끄러지는 망루의 지붕, 건물의 부속적 장식물로 보이는 앞마당 의 나무들, 흐르는 물의 물리적 힘을 잃고 상징적 존재로만 인지되는 강, 병산에 새 긴 판독되지 않는 글자들에서 전통 양식과 약간의 실험적 시도들이 공존해 있다.
지속적으로 작업한 <병산>의 후속 작에서는 안정적으로 표현된 만대루와 마주보 는 병산의 다양한 풍경 묘사에 우리의 눈을 좀 더 집중하게 한다. 상징성은 벗어났 지만 작위적으로 굽어 흐르는 강은 병산을 섬처럼 에워싸면서 주변의 풍경과 독립 된 세계를 이루게 한다. 여기서 병산은 하나의 시점으로 완결된 단일한 공간성을 보이기보다 시점의 이동에 따라 획득되는 부분과 부분의 이질적 장면들이 별다른 긴장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공존하면서 전체로서 조화로운 산의 모습을 드러낸 다. 아마 만대루 여러 지점에서 포착되는 산의 실제와 그의 무의식과 기억 속에 잠 재되고 학습된 관념적 산의 실재가 여러 폭의 병풍 그림처럼 펼쳐진 게 아닌가 싶 다. 마지막 <병산>에서 만대루라는 물리적 시점은 완전히 사라지고 안도 아니고 바 깥도 아닌, 경물의 소재와 시점조차 불분명한 지각적 생성물로서의 산이 그것의 존 재감을 드러낸다. 병산을 응시하는 장소와 그것을 둘러싼 시간의 특정성이 소멸되 고 현존하는 대상과 지각하는 몸이 관계하는 지점이 된다.
2013년 작 <Eye & Mind> 시리즈는 대상의 묘사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 다는 점에서 재현적이지만 작가의 몸이 대상과 관계 맺고 반응하는 과정을 시각화 했다는 점에서는 비재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각적 경험은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 의 일상적 방식을 멈춤으로써 가능해진다고 메를로 퐁티는 말한다 과학과 지식이 개입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시각을 보류하거나 멈춘 후에 지향하는 시각이 퐁티가 말하는 ‘체험된’ 시각이다. 그래서 차현욱은 시각적으로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세계 와 그것이 몸의 지각, 즉 ‘울림’이라는 접점으로 지각의 표면에 부상하는 과정을 전 달하려고 한다. 그런 그에게서 망막의 인지를 따르는 리얼리즘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자의 응시와 관찰, 기다림과 몸의 기억을 전달하고자 하는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볼 수 있다.
모필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선과 비백들이 생성되고 그 비백을 채우는 다양한 필 선의 흐름과 불규칙적인 자취들이 작가에게 ‘울림’과 ‘공명’의 투영과 흔적인 것처럼 관객을 열려진 시지각의 세계로 이어지는 체험을 유도한다. 그가 응시하고 탐구하 는 대상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경계가 교차하고 역전될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흡입하고 잠식하며, 때로는 배척할 수 있는 그런 불완전한 자연이다. 그래서 대상이 그를 보는 것인지, 그가 대상을 지각하는 것인지 그 차이가 묘연한 상태로 관객의 시선을 초대한다. 관객 역시 자신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체험에 참여할 수 있 다. 타자의 시선은 아무 때나 원하는 지점에서 그 드나듦이 자유롭다. 그가 묘사하 는 세계는 관객 앞에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제시보다는 충만한 체험의 보고로, 소 모되지 않는 실재를 보여주는 양상을 띠게 된다. 그래서 인지 지각의 과정과 표현 의 깊이가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는 느낌을 준다.
차현욱의 바람은 두 가지이다. 그가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다 루고 싶은 매체인 지필묵으로 얻을 수 있는 보편적 회화로서의 가능성 탐구와 실현 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그림을 전통매체라는 인식의 편견에서 벗어나 그냥 '그림'으로 보아달라는 것이다. 그의 바람은 두 겹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당대 미술 환경에서 회화의 지형에 가해온 압박감과 더불어 전통매체에 대한 무관심과 이해의 부족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펼쳐질 날들은 미술사의 선배들이 경험했듯이 낙관과 회의의 경계에서 동요하고 방황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 도 회화라는 사각형의 신비가 지니는 치유와 전복, 은근한 매력을 우리는 거부할 수가 없고 사각형 속에 1인칭 화자의 말없는 사유와 거침없는 해석을 늘 기대한다.
김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