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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까이​_박소호_2022

# 광각으로부터

카메라의 발명은 수많은 변화와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빛과 시간을 이용하여 현장을 기록하고 표현한다. 특히, 오늘날 카메라는 우리 손안에 들어와 많은 것들을 행하고 있다. 소비의 범주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일상을 기록하고 소통하고 표현하게 하며 소비로 이어지게 한다. 카메라가 옵스큐라가 재현한 풍경의 잔상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거대한 생명체와 같은 플랫폼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인간의 눈에서 렌즈가 추가된 시점에 우리는 실로 다양한 가능성을 얻게 된다. 최근 제임스웹 망원경은 허블망원경의 디테일에서 더욱 진화되어 아득히 먼 우주공간을 매우 선명하게 재현한다. 사상수평망원경(EHT)은 여러 지역에 있는 레이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형태를 포착하게 했다. 이처럼 우리는 렌즈라고 하는 빛의 굴절을 활용한 물리적, 혹은 개념적 유리를 통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차현욱의 그림은 이러한 확장된 세계관 속에서 자신의 시각적 경험으로 발현되어 매 순간 자라나고 있는 ‘더 넓은 풍경’을 그려낸다.

# 망원으로

그가 그려낸 장면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살결이나 생물의 조직처럼 보이는 표면을 볼 수 있다. 색연필이나 크레파스와 같은 건식재료로 그려낸 화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안채라고 불리는 고체 형태의 물감을 사용한다. 물을 희석하여 사용해야할 재료를 물을 최대한 덜어내고 사용한다. 그리고 붓을 최대한 건조하게 하여 한지 위에 얇게 얹혀낸다. 그리고 마무리에서 아교와 같은 접착제를 활용해 안료가 날아가지 않도록 정착한다. 이 과정은 기존의 한국화에서 볼 수 있는 채색 방식과 조금 다른 방식이다. 하지만, 습식에서 건식으로 변화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표면의 입자와 조직이 더욱 드러나 보인다. 화려한 듯 보이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입자, 단지, 형태와 색은 변화하지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질감과 깊숙이 자리한 원재료의 거친 느낌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구성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입자들은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 우주의 풍경에 닿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의 모습도 비출 수 있게 한다. 과거 우리 그림에서 ‘이동시점’이라는 개념이 있다. 화면 안에 설정된 관찰자가 소실점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풍경을 가깝게 하거나 멀게 한다. 원근법의 방식에서 바라보면 이 구성은 소실점의 어설픈 사용을 볼 수도 있지만 이는 풍경을 바라본 관찰자의 심미적 풍경을 그려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작가 차현욱은 오늘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확장된 풍경과 이미지를 반영한다. 가상과 현상을 교집합으로 그려낸 블랙홀의 이미지처럼 그의 작업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여러 시점의 세계가 한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 경계에서

차현욱의 화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서사에서 질감으로 눈길을 옮기게 된다. 그 시선의 끝에는 일종의 자국이 있다. 선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화면 위에 안료가 올라가기 전 만들어진 흔적에 가까운 선이다. 건조한 안료가 살포시 화면에 올라가면서 이 자국은 서로의 경계면을 뚜렷하게 하여 또 하나의 겹을 보이게 한다. 이것은 하나의 변곡으로 작용되어 여백의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게 한다. 단순히 비워지고 채워지는 물리적 현상에서 벗어나 그것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고 비워져 있든 바라보는 사람의 시야와 가능성만으로 열리는 여백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는 오늘 자신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에서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과 확장의 의미를 서사와 질감이 끝나고 시작되는 지점에서 이야기한다. 비워짐과 채워짐이라는 관계에서 자리해온 여백의 개념은 오히려 경계면에서부터 자라나는 것일 수 있다. 서사의 확장, 질감의 포용, 경계면의 변곡,

차현욱의 화면은 가득 채워져 있다. 통상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비움의 여백이 아니라, 오히려 채워짐과 쌓아냄의 여백으로 광활한 가능성의 세계관을 품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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