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난제들
차현욱
#어딜 향하고 있나, 나의 고향
부산, 나의 태생지. 거기서 12년을 보냈다. 3~4년 전까지, 고향에서의 세월은 깊은 바다와 연결된 닻줄과도 같이 느껴졌다. 심연같이 깊은 바다 밑 땅과 해수면을 표류하던 나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닻을 내렸던 그 장소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강한 감정이 밀려온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망망대해의 푸르름은 내 발이 닿고 싶어 하는 이 땅과 창공의 구름 너머까지 퍼져 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간절히 원하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쌓여온 경계들이 희미해지며 더 이상 고향이라는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다시 돌아온 이방인의 고향
지속적인 이주와 방랑은 끊임없이 생겨나는 난제들 때문이다. 표류하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입자처럼 떠돌다가 어떤 중력에 사로잡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수많은 난제를 보면서 허무하지만 놓을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끌리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 질문은 뚜렷하지 않고 확신할 수 없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감정과 상상으로만 더듬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명확하지 않은 난제를 대하는 방식은 '그리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명확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이방인은 이렇게 사람들이 정립한 견고한 의미의 석축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이 되기보다, 그 석축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는 '거리감'을 찾아다니고 있다. 내가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고향 바다 깊은 곳에 내려진 닻줄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잠시지만 고향으로 향한다. 큰 강과 끝없는 바다, 바위와 숲이 들려준 애기소의 전설, 거대한 강가에 드리워진 버드나무와 그 치유, 정화력이 떠오른다. 과거 고향에서 보낸 밤의 시간은 닻이 내려진 심해 어딘가에 있다. 이것을 위한 그림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의 난제를 덕지덕지 붙이고 돌아온 이방인의 모습이다.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